며칠 전, 뉴스 기사를 보던 중 “빌보드 1위,유튜브 1억 뷰…데뷔 20년 이루마의 역주행“이라는 글이 눈에 띄였다. 기사를 열기도 전에 무릎을 탁 치며 ‘이제서야 이루마의 진가를 전세계가 알게된건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때는 2004년,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다. 따듯한 봄날의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자기 인맥이 넓어서 피아니스트 이루마를 직접 학교로 초대했다며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을 강당으로 부르셨다. 당시 이루마가 누군지도 몰랐고(당시 이루마 데뷔 4년차), 피아노 연주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며 별 기대없이, 단지 수업을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만 사로 잡혀 기분 좋게 강당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나는 운이 좋게도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곤 이루마의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심장에 총알을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고 슬플 수 있다니!!! 피아노를 10년 넘게 쳤던 나는 도대체 무엇을 연주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완전히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눈과 손가락으로만 건반을 쳤다면, 그는 소울을 부어 넣으며 온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느낌이었달까. (아 그때 스마트 폰이 있었다면, 그 경이로운 순간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연주도 연주지만, 정말 감성 넘치는 이런 곡들을 다 혼자서 작곡하다니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그는 내 마음을 쏙 훔쳐갔고, 그날 이후로 나는 이루마 추종자가 되었다 ㅋㅋㅋ 10년 넘게 치던 피아노는 내 적성이 아니라고, 나는 음악 재능이 없다며 당시 때려쳤었던 피아노를 그의 음악을 들으며 다시 시작했다. 그의 앨범과 악보집을 샀고, 최대한 그의 연주와 감정을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음반 CD를 틀어놓고 동시에 연주하는 쉐도잉 연습을 미친듯이 했다. 나는 처음 본 악보를 바로 칠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은 없었고, 그냥 연습을 많이해서 곡들을 연주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이 때였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 가장 심금을 울렸던 곡은 그의 3집, From the Yellow Room에 실린 Indigo. 고1때 음악 실기로 악기 연주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이 때 이 곡을 연주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토시하나 안틀리고, 감정도 최대한 원곡처럼 살리려고, 틈만 나면 연습했다. 주중에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늘상 밤이었지만, 전자 피아노여서 헤드셋을 끼고 밤에도 연주할 수 있었던게 신의 한수였지. 그렇게 노력한 끝에,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기교가 많이 들어가는 곡은 아니라서 음악 선생님이 크게 감명 깊어 하는 것같진 않아보였지만, 나에겐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빛을 발휘한 짜릿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피아노도 없고, 피아노를 안친지 너무 오래되서 다시 이루마 곡들을 연주하려면 악보도 꼭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나중에 꼭 짝궁한테 직접 연주해주고 싶은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돌이켜보면 이루마님을 초청해주신 음악 선생님 인맥(?)덕분에, 고1때 이루마 공연부터 시작해서 우린 매해 예술의 전당 1층 최고 좋은 자리에서 정말 유명한 뮤지컬들을 단돈 2만원에 엑스트라 배우들 얼굴 표정이 낱낱이 다 보일만큼 가까이에서 봤었다. 뮤지컬 배우 박혜미님과 전수경님이 공연했던 맘마미아를 보고서는 진짜 또 심장저격되어 한땐 또 뜬금없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었다는. ? 음악을 사랑하게끔 매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하셨던 편무영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음악 수업이 정말 재밌긴 했었어. 시험 곡이었던 독일 가곡 ich liebe dich 노래 연습을 한다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이랑 함께 주구장창 떼창했던 것도, 장조 & 단조 바꾸는 이론 시험 준비한다고 경석이네 집에서 다같이 모여 공부했던 것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내겐 정말 너무너무 소중한 추억이다. 그때를 회상하며 나의 최애 곡을 다시 들어본다. 이루마님이 전세계에 더욱 더 널리 알려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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