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발렌타인데이를 챙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런 상업적인 기념일들은 어느 보통날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매해 새해에 슈퍼에 한 구역을 차지하고 즐비하게 놓여진 화려한 발렌타이 상품들을 볼때면, 별 생각없이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올해 발렌타인데이에 나는 특별한 선물 하나를 받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벌써 퇴근해서 집에 와있던 스티븐이 양손 고무장갑을 끼고 나와 입이 귀에 걸린 상태로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는게 아닌가.
욕실 청소가 내가 주는 발렌타인데이 선물이야 !
예전 같았으면 ‘무슨 선물이 이래. 정말 멋드러진 선물이 아니라면 차라리 말을 하지를 말지’라고 생각했을텐데, 나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그의 선물을 받고 정말 기뻤다. 왜냐면 나는 그가 그의 ‘사랑의 언어’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5가지 사랑의 언어 』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비추어 보았을 때, 스티븐의 사랑의 언어는 Acts of Service(봉사)이다. 여기서 봉사라 함은,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이다. 부부의 경우, 배우자를 도와줌으로써 기쁘게 하고, 배우자를 위해 무언가를 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요리를 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옷장을 청소하고, 세면대에서 머리카락을 끄집어내는 등이 ‘봉사’라는 사랑의 행위에 해당 된다.
돌아보면, 스티븐은 여태 집안 일을 자진하여 도맡아 해오고 있고, 내가 토요일 새벽에 알바를 갈 때도 늘 같이 일어나서 데려다주어왔다. 언제 마지막으로 내가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과 부엌 청소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집안 일은 스티븐이 100% 전담하고 있다. 난 여태 본인이 청소하는 걸 좋아해서 먼저 나서서 하나보다 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보니, 그는 그의 사랑의 언어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그와는 다른 사랑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당연히 그가 표현하는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마치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나에게 프랑스어로 사랑한다고 백날 얘기해도 내가 프랑스어를 모르면 그 뜻을 이해 못하듯, 나는 그만의 사랑의 표현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스티븐이 들으면 섭섭한 이야기이겠지만, 그가 집안 일을 해주는게 고맙긴해도 나에게 그리 큰 감동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어쩌다 집안일을 할 때면 스티븐은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감동을 받고 고마워했다.

내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Words of Affirmation)이다. 스티븐에게 이 책을 읽고 내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인것 같다고 말하니, 무릎을 탁 치며 완전 꼭 맞아 떨어지는 결과라며, 나는 늘 말로써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이 책에 의하면 사랑의 언어는 태어나면서 성격처럼 굳어져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인 나는 하필 칭찬에 아주 인색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얼마나 칭찬과 인정하는 말에 목말라했는지, 어렸을 땐 늘 엄마에게 “엄마 나 사랑해?”라고 물어봤었고, 성인이 되서도 부모에게 “왜 나에게만 유독 칭찬에 인색해?”라고 불평을 하곤 했다. 부모님이 물질적으로 아낌없이 채워주는 것은 몸소 느낄 수 있었지만 늘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 이유를 바로 이 책에서 설명한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사랑 탱크(love tank)가 있다. 이 사랑 탱크는 각자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받았을 때에만 채워진다. 자동차의 연료 탱크에 기름을 넣어 적당한 레벨로 유지시켜 주어야 하듯, 사랑 탱크에도 충분하게 사랑을 채워 사랑의 레벨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가 사랑의 언어인 우리 엄마는 그녀의 언어로 충분히 사랑을 표현했다. 칭찬을 왜 안해주냐는 나의 질문에는, ‘밖에 나가선 너 칭찬을 한다’라고 답하곤 했던 엄마였다. 만약 엄마가 내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임을 알았다면, 나의 언어로 사랑표현을 해서 내가 더 사랑받는 느낌을 받았을것임이 분명하다. 나의 부모님은 물질적 필요는 채워 주었지만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정서적 갈등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소통되지 않았던 것 뿐이다.
인정하는 말이 중요한 나는, 누군가로부터 인정해주는 말을 들었을 때 최고 경지의 행복함을 느끼고, 반대로 비판이나 인격모독적인 말들을 들었을 때 엄청 좌절한다. 그래서 물리적인 선물보다 진정성이 담긴 생일카드 받는걸 더 좋아하고, 작은 칭찬부터 그리고 인격모욕적인 말까지 다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여지껏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인간관계에 가장 기본적인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해왔다. 이런 말을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나의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나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부부의 관계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상처 받은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할거라고 믿는다. 나의 경우, 칭찬에 인색했던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 그들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주었음을 인지하여 마음을 풀고,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인격모독적인 말과 그에 연관된 지나간 인연들을, 비록 나의 과거에서 지울 수는 없겠지만, 과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자유러워져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5가지 사랑의 언어
남편과 아내가 같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자신의 주된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배우자가 우리가 전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당혹스러워 한다. 우리는 사랑을 표현했지만 그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낯선 언어이기 때문이다. 저자 개리 체프먼은 『 5가지 사랑의 언어 』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써야 소통이 잘 되고 서로의 사랑 탱크가 가득 채워질 수 있다. 다음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서 어떤 경우에 당신이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지는가? 그것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이다. 만약, 두가지의 사랑의 언어가 똑같이 본인의 사랑의 언어로 느껴진다면, 당신은 사랑의 언어를 이중으로 구사하는 사람일 것이다.
1. 인정하는 말 | Words of Affirmation
사랑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은 세워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칭찬하는 말이나 감사의 표현은 사랑을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향해 내뱉은 비판이나 정죄하는 말이 당신에게 몹시 상처가 되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다.
2. 함께하는 시간 | Quality Time
함께하는 시간은 상대방에게 온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같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둘이 함께하는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질적으로 얼마나 충실한 시간을 보내느냐다. 내가 ‘함께하는 시간’으로 당신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당신의 말을 공감하며 듣는 것을 의미한다.
3. 선물 | Receiving Gifts
여기서 선물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반드시 금전적 값어치를 수반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매주 한번씩 줘야 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표가 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을 받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주든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길에 피어있는 꽃조차도 말이다. 반대로, 그가 이전에 당신이 준 선물에 대해 비판적이었거나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면 선물받는 것은 그의 사랑의 언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4. 봉사 | Acts of Service
봉사라 함은, 배우자가 원하는 바를 기꺼이 행동으로서 보여주는 것이다. 배우자를 위해 무언가를 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요리를 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옷장을 청소하고, 세면대에서 머리카락을 끄집어내고, 거울에붙은 오물을 닦아 내고, 쓰레기를 버리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침실에 페인트칠을 하고, 책장의 먼지를 털어 내는 것 등이 ‘봉사’라는 사랑의 행위들이 된다.
5. 스킨십 | Physical Touch
사랑의 언어가 스킨십인 사람들은 배우자가 먼저 자신에게 스킨십을 시도해 주기를 갈망한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지고, 손을 잡아주고, 껴안고, 성관계를 맺는 것등의 ‘사랑의 접촉’은 사랑의 언어가 스킨십인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생명줄과 같다. 사랑의 언어가 스킨십인 사람에게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스킨십으로 표현하는 메세지가 훨씬 크게 들린다.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세 가지 방법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는 방법에는 아래의 세 가지가 있다. 아래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 책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세 가지 방법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는 되지만 절대적 기준이 아님을 명심하라. 예를 들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하는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은 그의 아버지처럼 아내에게 좋은 선물을 주면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선물’이 반드시 그의 사랑의 언어는 아니다. 그는 단지 아버지가 하던 것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나 또한,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언어이지만, 자라면서 많이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내가 나의 사랑의 언어로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을 지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더 자세한 예시와 설명은『 5가지 사랑의 언어 』책을 읽으며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1. 배우자가 당신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와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배우자의 비판이나 정죄하는 말이 당신에게 몹시 상처가 되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다. 당신의 배우자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속상하다면, 당신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일 수 있다. 배우자가 선물을 하지 않으므로 기분이 상한다면, ‘선물’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일 가능성이 높다. 배우자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아 상심이 된다면, ‘함께하는 시간’이 사랑의 언어일 가능성이 높다.
2. 당신이 배우자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사랑을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일 수 있다.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배우자에게 무엇을 가장 많이 요구했었나?”라고 자문해 보자. 가장 많이요구했던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와 일치할 수 있다. 그런 요구들은 배우자에게 잔소리로 들릴 것이다. 사실은 그런 요구들이 바로 당신이 배우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다.
3. 당신은 배우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사랑을 느끼는 것일 수 있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해보라. 배우자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이 결국 자신이 배우자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배우자에게 ‘봉사’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인정하는 말’이 당신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런 말을 배우자에게 자주 할 것이다.
관계에선 누구나 자연스럽게 ‘내가 받는 사랑’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길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 ‘상대방이 받는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배우자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논의해보고,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표현해보도록 조금씩 노력한다면 부부 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지거나 개선될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비록 스티븐이 이번 발렌타인데이 때 나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랑의 언어를 인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욕실청소를 했다면 그의 감동은 더 배가 되었겠지? 아무래도 내년 발렌타인데이 때에는 내가 욕실청소 하는 것을 고려해봐야겠다. 난 선물로 감동 넘치는 카드 하나를 달라고 할 셈이다. ?
내용 참고: 5가지 사랑의 언어 (5 Love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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