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을 많이 하고 내성적인 내가 미국에서 쌩판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모임에서도 큰 부담없이 쉽게 나눌 수 있는 주제는 바로 영화이다. 최근 화제작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영화까지, 영화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얘기할 수 있다. 물론 영화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같은 영화를 보았는지, 그 영화가 재밌었는지 별로였는지, 어떤 부분이 재밌었고 별로였는지 등의 간단한 감상평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상대방과 쉽게 유대감이 생기고 분위기도 금방 무르익는다.
지난 해 연말, 짝궁네 회사 연말 파티에서도 여느 모임과 마찬가지로 영화 얘기가 자연스럽게 대화속에 나왔다. 얘기를 하다보니, 스티븐네 동료들은 나온 지 좀 된 영화의 경우, (외국에서 온) 내가 그 영화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들 했는데, 매해 한국 명절에 티비에서 나왔던 영화라고 말했더니, 다들 정말 신기해했다. (이 반응 무엇? 신기해 하는 반응이 정말 의아했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어떤 미국인이 80년대 한국 영화를 봤다고 하면, 아마 나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매년 명절에 어떤 영화들이 방영되었는지 물어보길래 생각나는대로 말해주었는데 (나홀로 집에, 스피드, 타이타닉…등), 미국에서도 매 명절마다 빠지지 않고 TV에 방영되는 명절 단골 영화들이 있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의견을 모아 간추린 영화는 총 4개의 영화이며 아래에 스포일을 최대한 줄인, 짧막한 영화 소개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약간 버무려서 소개한다. 평상시 대화에서 영화 Reference를 많이 쓰는 미국이니, 한번 씩은 시간을 투자해 볼만한 영화들이라고 생각한다.

Independence Day (1996)
방영되는 명절: 독립기념일
IMDB: 7/10 | NAVER: 8.15/10 | Rotten Tomatoes: 67%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 Independence Day. 한국 제목으로도 ‘인디펜던스 데이’로 영문명과 똑같다. 영화는 실제 독립기념일과는 사실 관계가 없다. 실제 독립기념일이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영화는 인류 전체와 외계인과의 대립, 그리고 외계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윌 스미스의 영화는 그 특유의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는 공통된 캐릭터 때문인지 왠만한건 다 즐겨보기 때문에 이 영화도 좀 뻔하지만 재밌게 봤다.

Groundhog Day (1993)
방영되는 명절: 추수감사절
IMDB: 8/10 | NAVER: 9.16/10 | Rotten Tomatoes: 96%
영화의 한국 제목은 ‘사랑의 블랙홀’이다. Groundhog Day[그라운드 호그 데이]는 매년 2월에 펜실베니아 주 Punxsutawney [펑수타니]라고 불리우는 마을에서 행해지는 기념 행사날이다. 유럽에서는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을 봄이 오는 신호로 삼는 관습이 있었는데, 펜실베니아에 정착한 독일 이주민들이 다람지과의 Groundhog (동물 이름)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봄의 전조를 매년 예측한 게 시간이 지나며 기념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영화는 이 기념일에 일어지는 일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더 이상의 스포는 못하겠음), 추수감사절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 같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왜 추수감사절에 보는거야?라고 물으니… 그냥 전통이라고 한다. 마치… 추석특선 영화로 타이타닉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걸까? 암튼, 영화 자체는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냥 그랬는데… 평점이 이렇게 높은거 보고 깜놀!

It’s a Wonderful Life (1946)
방영되는 명절: 크리스마스 이브
IMDB: 8.6/10 | NAVER: – | Rotten Tomatoes: 94%
영화의 한국 제목은 ‘멋진 인생’. 우리 시댁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매년 이 영화를 TV를 통해 본다. 흑백 영화가 익숙치 않아 집중이 않되는건지, 배 부르게 저녁 한 상 먹고나서 봐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볼 때면 늘 꾸벅꾸벅 졸게 된다… 하지만, It’s a Wonderful Life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시사하는 영화로, 미국 영화 협회에서 미국인들이 감동 받은 영화 1위로 꼽히기도 했다. 40년대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 옛 배우들의 약간은 오바스러운 연기와 목소리 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A Christmas Story (1983)
방영되는 명절: 크리스마스 당일
IMDB: 7.9/10 | NAVER: – | Rotten Tomatoes: 89%
한국명: 크리스마스 스토리.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정말 귀여운 영화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일기를 영화로 만든건가 싶을 정도로- 어린이의 심리를 정말 영화로 잘 녹여냈다. 영화는 비비건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주인공 랄프의 이야기인데,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비건에대한 얘기가 나온다. 랄프의 상상이 펼쳐지는 장면들에는 짝궁이랑 둘이 이구동성으로 “맞어! 나도 저 나이 때 저런 상상 했었어!”라고 외쳤다는. 신기했던 장면은 – 랄프가 벌을 받을 때 비누를 입에 무는 장면이 나오는데 – 미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욕설을 할 경우, 그에 대한 벌로 부모들이 욕설을 한 더러운 입을 비누로 씻어야한다며 고체 비누를 입에 물게하는 벌이 있었다고 한다. 스티븐도 한번 입에 비누를 문 적이 있었다고.
영화 팬들을 위한 글: 미국서 이 영화 안봤다하면 간첩되는 영화 7선
내용 참조: 네이버 1, 2, 3, 4 위키 1, 2, 3, 4
Images courtesy of Collector, MovieRankings, Fandom 1, 2, cottonbro on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