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입국하고 1년이 되는 날 기념 비디오를 찍겠노라고 별러왔는데 오늘이 갑자기 문득 생각나서 달력을 봤더니 벌써 3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왜 나는 1년이 되는 3월 3일에 기억해내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보니 3월 2일과 3일 양일에 거쳐 침대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해낼 겨를이 없었다.
머리가 잠깐 아파서 타이레놀 한번 챙겨먹은 것 외에는 1년 넘게 크게 아픈데 없이 지냈는데 사지가 후들거리고 오한이 오고 미슥거림과 어지러움이 동반되는 등 마치 돌치레라도 하는 것 마냥 딱 1년이 되는 이 기가막힌 타이밍에 아프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하나둘씩 더해가는 증상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처음에는 임신인가 생각하다가 노로 바이러스인것으로 나 혼자 추정 및 결론을 내렸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병원으로 혼자 걸어가거나 엄마가 보냈을텐데, 여기 미국에서는 아프다고 그냥 병원에 찾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어느새 나는 어느 미국인들처럼 똑같이 병세를 스스로 진단하며 해결점을 찾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정말 죽을듯이 아픈게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 높은 병원비가 주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설령 커버가 잘 되는 보험이 있다해도 정말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에만 방문한다. (응급실 외에는 아프다고 한국처럼 예약없이 그냥 방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약 성분에 관련해서는 척척 박사이다. 같은 감기여도 본인 몸 상태에 따라 어떤 약 성분을 먹어야하고 어떤 성분을 피해야하는지 꿰차고 있다. (아. 그래서 어떤 성분의 주사인줄도 모르고 주사를 맞는 나를 보고 한국에서 신랑은 경악했었나보군)
전문적인 의사선생님을 맹신하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문을 드나들었던 내가 복용해야할 약을 잘 알고 있을리 만무한 터. 하지만 노로 바이러스에 딱히 복용해야하는 약이 없다는 걸 쉽게 인터넷에서 찾고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정신력으로 이틀을 보냈다. 그나마 금요일 오후부터는 80%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던것 같은데 목요일에는 흰죽 밥공기 반정도만 먹은게 다이고 하루종일 물만 계속 마시며 언제 게워낼지 모르는 위를 잡고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었다.
힘든 밤이 되겠지만, 이겨내야 해. 무조건 싸워내야 해. 힘내.”
처음으로 내 온몸 안에서 싸우고 있을 세포, 조직, 장기들에게 말을 건넸다. 몸 구석구석에서 아프다고 난리가 난건지 아니면 몰래 침투된 바이러스들과 싸우느라고 난리가 난건지, 몸 전체를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듯 아프고, 밑으로는 계속 나오는데다가 헛구역질도 계속 나서 입으로 가까스로 신음소리 내며 숨을 골랐다.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정신은 어느때보다도 강하게 깨어있었다. 내 몸의 전두지휘를 하는 나 마저 정신을 잃으면 금방 날 것도 며칠이나 걸릴 것 같은 두려움에 더욱 더 정신줄을 와락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신랑은 몇시간 동안 화장실 바닥에 누워 곱송그린 채 식음을 전폐하며 아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응급실에 가야하는건 아닌지 재차 물었다.
괜찮아. 약이 딱히 없대. 시간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미국이니까 미국방식을 따를꺼야!”
아픈건 그 다음날 저녁이 되니 80% 회복되었고 글피가 되서는 100% 나았다. 병원을 너무 자주 드나들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건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이참에 잘 됐다. 신랑 회사에서 들어준 커버 좋은 보험이 있긴 하지만, 이 기회에 미국인들처럼 정말 필요할 때만 병원을 가고 내가 어떤 약 성분을 먹고, 어떤 성분의 주사를 맞는지도 꼼꼼히 알아봐야겠다.
이민 한 살, 그리고 지난 1년간의 회고
미국으로 넘어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제 겨우 이민 한살이다. 지난 1년동안 나는 정말 어린 아이처럼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스펀지처럼 습득했고, 하루에도 수차례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문화차이를 인지하고 배웠다. 지금 돌아봐도 배우는 태도 하나만큼은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본인에게 후하게 점수를 주는것도 때론 필요하다)
문제는 이 한살배기 아이가 이곳에서 20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어른이 되고파 안달이 났다는거다. 어느 성인처럼 직장에 다니고, 친구들 및 지인 인맥을 관리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하는데 당연히 한살이고 기반을 다져놓은게 없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산유화님 말처럼, 내가 한살배기라고 생각해야 좌충우돌하며 서툰 나의 모습에 너그러워질 수 있을듯 하다.
시간이 지나 미국에서 년차가 쌓이면 아이가 유치원에가서 친구들을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사귀듯이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하나둘씩 나도 모르게 차근차근 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 많이 넘어지고, 모방하고 연습하며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이 곳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된,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마음이 조급하게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게 중요할듯 하다.
구직생활을 시작하고 좀처럼 넘기 힘든 취업 문턱, 그리고 주변에 커피 한잔 하며 허심턴히 속사정을 말할 수 있는 친구 하나 없어 한 동안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나에게 신랑은 너무 마음이 급하면 될 일도 안되는 법이니 구직활동을 올스탑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본인 회사에서 지원하는 온라인 수업들을 들으며 좋은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리는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요즘은 기회는 보고 있지만 구직활동 자체는 올스탑하고 온라인 수업을 여러개 듣고 있다. 블로그, 집안 일, 온라인 수업이 주 일과인데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꽉꽉 차서 꽤나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3때 과외선생님이 늘 해주시던 말이 떠올른다.
신애야, 때가 올 때까지 자세를 낮추고 꾸준히 준비하며 기다려. 기회는 분명히 올꺼야.”
지금 다시 난 자세를 낮추고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해야하는 때일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 이민 한 살만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을 꾸준히 기록하며 내가 해야할 일을 하다보면 좋은 사람, 좋은 기회, 좋은 직장을 언젠가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돌치레도 했으니 더욱 더 성장할 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