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 단상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남편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 온 지도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 다행히 이곳에서의 생활 패턴이나 음식, 문화가 2년동안 체류했던 호주와 크게 상이하지 않아 나 조차도 신기할만큼 아직까지는 아주 씩씩하게 정말 잘 적응하고있다. 그 배후에는 미국으로 오기 전,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챙겨준 친정 부모님과 아들네 부부가 미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신 시부모님, 그리고 평생 알아왔던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신랑의 고향친구들이 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내 인생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 편안함, 스트레스 제로, 확신감, 설레임등의 단순하고 긍정적인 여러 감정들이 지난 몇달간 나를 새롭게 다듬고 빚어온 느낌이다. 파라다이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 중심에는 단연 남편의 배려가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각설하고, 오늘은 우리의 결혼을 잠깐 얘기하고자 한다.


남편을 단짝 이성친구로 3년동안 알고 지내고, 2015년 1월말부터 공식적으로 사귀고나서 약 7개월 뒤에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결정하게 되고, 이어 결혼 얘기도 갑작스럽게 나오게되어 정말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우리의 관계는 급진적으로 발전되었다. 결혼은 반대하던 나의 가치관이 어느날 나비효과라도 일어난냥, 하루아침에 결혼에 대해 180도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막연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용암이 뿜어지듯 마구마구 솟아 올랐다. 그렇게 결혼이 처음 얘기가 나오고 한달 후,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다.

다음달 10월이면 벌써 정식 부부가 된지도 1년이 된다. 결혼이 손해보는 장사라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고 굳게 믿었던 불과 1년전의 내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결정하긴 했지만 11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결혼은 참 잘한것같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미래를 함께 갈 수 있다는 동반자가 있다는것, 둘만의 보금자리를 가구 및 소품 하나하나 우리 힘으로 장만해서 채워가는 재미, 통금에 구애받지 않고 막차를 타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점, 맛있는 음식도 같이 해먹을 수 있고, 같이 일하며 저금도 하고, 차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는 등, 나에게 결혼은 지난 1년간 인생의 전향점이 되었고, 커리어 성취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던 20대의 긴장된 나의 자아를 좀 더 유연하고 온화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려했던 (내가 생각했던) 결혼의 단점들은 아직 피부로 느끼고 있지 못하다.

남편을 평생 남이라고 생각하라

연애를 막 시작하던 시절(혹은 단짝친구였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느껴지는건 단순히 ‘결혼’이란 타이틀이 부여되어서라기보다, 그만큼 우리의 관계가 너그럽고 평화로워’졌기’ 때문일거라 생각이든다. 지난 1년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서 남편은 ‘배려’를, 나는 ‘받아들임’을 부단히 연습하고 알게모르게 노력해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랑은 나에게 짖굳은 말도 주변사람 의식하지 않고 툭툭 던지곤 했었고 누가봐도 정말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래서 한동안 내 친구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었다). 비교급을 가능하면 쓰기 싫지만 – 한국 남자라면 흔하디 건네주었을 꽃 한송이도 없었고, 선물도 상대방을 배려한것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사줄 정도로 눈치 코치 없고 로맨스는 코빼기도 안보이던 남자였다. 한 발 다가서면, 저 먼치 멀어졌던 3년의 시간. 오늘은 사이가 좋다가도, 내일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 속에 서로 자존심 지키기에 바빴다. 그때 나도 25살? 26살이었으니 – 언니들 말에 의하면 – 소위 몸이 금값이던 시절인지라 (내가 쓰고도 웃기다) 눈도 엄청 높아 키도 크고, 좋은 직장도 있고, 좋은 지역에 살며, 현명하고, 착하고, 옷도 잘입고 등등등.. 나름 겉으론 신경안쓰듯하며 마음속으로 언젠가 그런 남자가 나에게도 나타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시기여서 그때 당시에는 옆에서 혼자 밀땅하는 밉상 이성친구(지금의 남편)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겠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주말마다 같이 영화보고 밥먹고 놀러다녔지만, 연애하는 사이는 아니던 시절. 3년정도의 밀땅을 하고 수백번의 싸움과 다툼을 반복하다 겨우겨우 어렵게 시작한 연애를 시작으로 조금씩 남편은 나에게 양보하기 시작했고 ‘밉상’의 허물도 자연스럽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연애하던 짧은 기간에는 한 40% 바뀌었고, 결혼 후에는 99% 바뀐것같다. 그는 이제는 먹는것도, 가는것도, 사는것도 모든 생활의 중심이 내가 ‘행복한지’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을 결정한 시기에도 나는 이 사람이 지금의 모습처럼 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는게 신기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이이가 엄청 노력해왔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원래 이 모습이 진짜 모습일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바뀌었다는 사실만을 생각하면 약간은 무섭지만, 결혼하기 전에 엄청 잘해주고 결혼 후 소홀히 하는 남편보다는 결혼 후 더 잘해주는 남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아무도 결혼 상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처음엔 확실하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변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대부분 그렇듯, 결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더 이상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법이다. ‘중요한 건 더불어 살게 된 낯선 상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 The meaning of marriage from Timothy Keller “

여하튼 그렇게 배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도 쉽게 짜증내고 투정부리고, 편하다는 이유로 필터없이 마음속에서 나오는 못된 말들을 내뱉는 습관을 고치기 시작했다. 내가 고쳐야할 부분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 그이를 한국남자와 비교하지 않기
둘째) 원하는건 돌려말하지 않기
셋째) 마음 속의 말은 남편이라도 필터 꼭 착용하고 걸러서 얘기하기

함께 몇년 알아가다보니 미국인들의 연애방법과 문화는 한국과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한국남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이벤트성 기념일이라든가, 한국식 데이트 메너는 기대하지도 비교하지도 않는게 나에게 좋다는 결론. 또 하나, 말 안하고 내심 기대하면서 원하는 것을 못 받으면 실망하는거…모든 여자의 마음일까? 아님 한국 데이트 선물 문화가 그렇게 만연하게 자리잡은걸까? 미국인들에게는 직설화법만 통한다! 눈치, 융통성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원하는게 있으면 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그래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듣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떠나서 어떤 말이든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일은 남편이라도 걸러야 한다. 얼마 전 방송인 박슬기씨의 결혼식에서 개그맨 김구라가 이렇게 주례를 했는데 아주 명쾌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평생 남이라고 생각하고 예의를 갖추세요. 남편이라고 모든것을 이해받으려고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남에게 깍듯이 대하듯 남편이라도 (혹은 가족이라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함부로 내뱉을 말도 미리 되새겨보고 필터 처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 친정 부모님도 남대하듯이 깍듯이 투정안부리고 상처주는 말 안하는 딸이 될 수 있도록 이 말은 나에게 계속 마음속으로 되새김질 해야 할 명언으로 자리 잡을듯하다.


사실 나는 ‘나를 전 남자친구처럼 아껴주고 좋아해줄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아주 오래동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랑 이렇게 잘 맞고 나를 이만큼 좋아해줄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라는 궁금증만이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모…아직 결혼한지 1년도 채 안된 신혼부부라 누군가는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한 환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 또한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이렇다. 알면 알수록 배울점이 참 많고, 가끔 감정의 파도에 요동치는 나보다 반석처럼 훨씬 더 안정적이고 단단한 사람. 꽤 오래 단짝 친구로 지내왔지만 결혼 후 매일 이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 모습들을 맞딱드렸을때 가끔 낯설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대부분은 알게모르게 설레이는 경우가 더 많다. 마치 새로운 썸남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결혼 생활은 우리를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는 큰 원동력이라 믿는다. 앞으로 좋은 방향이든, 안 좋은 방향이든 둘이 방향키를 잘 잡고 우리가 그릴 이정표를 향해 함께 가며 성장해야한다. 가능하다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매 순간 같이 결정하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결혼하고 한번도 크게 싸우지 않은걸 보면 여태까지는 아주 자~알 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친구들에게 나의 지론은 아니지만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의 선택이 늘 옳아야만 하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지금에 충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생에 정해져 있는 답이 없듯,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얼마나 충실하고 서로를 배려하는지에 따라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을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혼을 결정하는게 좀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작은것에도 고맙다는 말 자주하고, 내 예민한 감정에도 신경 하나 하나 곤두세우면서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사과할 때는 또 바로바로 사과하는 남편. 내가 웃을 수 있도록 맨날 농담을 밥먹듯이 지어내고, 귀엽다고, 이쁘다고 말해주고, 나의 모든 약점과 컴플렉스 마저 아끼고 사랑하는 콩깍지 제대로 씌인 나의 낭군. 넌 이 글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마음만은 전달될거라 믿어. 너를 만나서 매일이 행복해. 우리 부부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 늘 그랬듯 멋진 팀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다채롭게 그리고 재밌게 열심히 꾸려나가자! ♥


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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