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큰 선물이 왔다.
미국에 건너와서 시댁에 있다가 독립한지도 어언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불 세트 하나 장만하지 않았던 딸이 걱정되었는지 한국에서 엄마와 남동생이 합심하여 이불 세트를 보내주었다. 그동안 어머님네 이불을 빌려와 썼던 이유는 신랑이나 나나 아직 딱히 마음에 드는 침구를 못 찾아 구입을 미룬건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챙겨주신 마음과 영상전화를 할 때 우리집 내부장식 색감을 눈여겨 보았다 그에 맞춰 장만해주신 섬세함에 또 무한 감동을 받았다. 하여튼 우리 엄마는 선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 킹사이즈인 침대에 퀸사이즈가 오다?
홈쇼핑을 통해 좋은 이불과 매트 세트를 하나 구입해서 보낸다고 – 사이즈는 가장 큰 킹 사이즈라고 했는데 받고 보니 넓이 사이즈가 약 30cm정도 모자르다. 한국에서 가장 큰 사이즈로 주로 퀸 사이즈를 판매하는 것을 알고 있긴 한데 구입 시 퀸과 킹을 헷갈린걸까, 아님 한국의 킹 사이즈와 미국의 킹 사이즈가 상이한걸까. 애써 챙겨준건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하루종일 속상했다. 그리고 고민끝에 남편과 상의하에 엄마와 남동생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가로로 눕히든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단 이불들을 세탁 맡기기로 했다.

# 세탁소에서 이불 세탁을 거절당하다
이불과 토퍼 자체가 부피가 워낙이 커 우리 아파트의 세탁기와 건조기에는 도저히 들어갈 사이즈가 아닌지라 집 앞 세탁소에 맡기기로 했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이불과 매트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세탁을 할 수 없다며 단번에 거절당했다. 이유인 즉슨, 부피가 커서 물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완벽히 건조하는데에 어려움이 있고, 극세사이다보니 세탁과정에서 이불이 터질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세탁하지 말고 그냥 사용하자고 했지만 나는 공장에서 생산된 후 세탁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이 이불을 도저히 바로 쓸 엄두가 안났다. 그리곤 바삐 한인타운의 세탁소를 알아보러 무작정 핸드폰 앱(Yelp)을 켜서 LA 한인타운의 세탁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여러 세탁소가 뜨는 가운데 한 곳을 임의로 선정하여 전화를 건 후, 사장님께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극세사 이불 세탁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이불이면 다 세탁이 가능하지요.”라는 – 내 예상대로 – 명쾌한 말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한인타운으로 한걸음에 찾아갔다.
60대가 훨씬 넘은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극세사’라는 단어도 모르고 10만원이 달러로 얼마인지도 가늠을 못하실 정도로 이민오신 지 오래된 분인것 같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하면 하는거지”라는 베짱이 두둑한 분으로 보였다. 이 이불이 왜 거절을 당했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엄청 고가의 물건인지 한번 물어보시고는 세탁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다음주에 찾아오래더라.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 배보다 더 큰 배꼽
가격이 얼마인고 하니 이불당 가격이 개당 35불, 총합이 70불이랜다. 이불 세탁은 보통 25불 부터 시작이 되는데 부피가 있어서 추가요금이 발생했다는 말에 이 커다란 이불 두개를 눈 앞에 두고 감히 항의를 할 수 없었다 (사실 흥정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우리 부부 생각하며 어린 동생이 알바해서 번 돈으로 구입한 이불세트가 9만원, 그리고 배송비로 엄마가 10만원을 냈는데 세탁비가 70불이라니! 환율까지 계산했더니 세탁값이 이불값과 똑같다.
원래 구입하고 싶어 눈여겨 두었던 구스이불을 300불에 주고 70불 세탁비를 냈으면 덜 아까웠으려나. 진작에 무슨 이불이든 구입했더라면 이렇게 배보다 더 큰 배꼽의 선물을 받으며 근심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보낸 정성스런 선물 하나에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나는 왜 선물을 받고도 이렇게 괴로운 고뇌를 거쳐야만 하는걸까. 그렇게 한참 스트레스받을 찰나, 엄마가 귀에 닳도록 하던 말이 머리에 스쳤다.
선물은 따지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게 받는거야. ‘고맙다’외의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시는 선물하기 싫다.”
# 받을때는 고맙게 받을 것
자라면서 엄마는 나에게 ‘범사에 감사해야한다’, ‘선물 자체보다도 주는 사람의 마음을 감사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입에 닳도록 해주었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잘 챙겨주는 소위 주기 좋아하는 사람(Giver)인데 이런 엄마에게도 아주 극소수이지만 엄마가 일부러 챙겨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얼핏 듣기론 선물을 주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맙다고 받으면서도 저번건 별로였다고 표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서도 둘러보면 받는 것에 익숙해진 taker들이 꼭 주변에 한둘씩 있기 마련인가보다).
# 감사의 마음으로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선물로 ‘선물을 잘하는 사람’이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사서 상대방을 당황하게끔 만드는 ‘선물을 잘 못하는 사람’이든 -가령 매해 생일 선물로 엉뚱한 선물을 주었던 우리 신랑이 예 – 좌우간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을 생각하며 선물을 골랐을 사람들이라는거다. 자라면서 귀에 박히도록 들은 엄마의 말이 떠오르자 그제서야 비로소 선물이란 본색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게 알바한 돈으로 본인에게 큰 돈을 들여 선물을 구매했을 동생과, 바쁜 일상속에서도 이 큰 부피의 이불을 쟁여메고 우체국을 두번씩이나 왔다가며 소포를 보냈을 엄마를 생각하니 이불이 침대에 안맞건, 세탁물이 이불값만큼 나왔건 그것은 더이상 중요치 않게 되었고 그냥 감사한 마음만 채에 걸리듯 남았다. 집 앞의 세탁소도 이불 세탁은 30불부터 시작하니 미국에서 어디든 맡기든 같은 값이 청구되었을거라는 논리도 나의 속상한 마음을 애써 위로시켰다. 이불세탁이 되는게 어디냐며, 이불 빨래는 1년에 한번해도 괜찮다는 나름의 긍정적인 결론들을 짓고 나는 그렇게 가족표 사랑 가득한 나의 이불들을 맡기고 세탁소를 나왔다.

그렇게 세탁을 마치고 우리 품으로 돌아온 이불은 옆으로 누이니 얼추 사이즈가 맞아서 지금 잘 쓰고 있고, 밑에 까는 토퍼는 결국 30cm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장롱신세가 되었다. 나중에 퀸 사이즈 침대를 구입할 때 쓰거나 아님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잘 수 있도록 거실에 깔아주는 용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물질 만능주의시대라지만 선물을 일단 받으면 챙겨준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생각해서 한껏 감사의 표시를 하는게 예의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이든, 의무감이 담긴 비지니스 관계속 선물이든 선물이란 고유한 본질을 생각하며 싫든 좋든 낙관적인 태도로 감사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자그만한 감사함의 불씨가 모든것을 아름답게 비춰주기 마련이니까.
엄마 말이 다 맞다고 믿었던 어렸을 때와 달리 머리가 커가면서 엄마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던 나이다. 무한대로 그려질 수 있는 삶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삶을 살아본 엄마의 말이 항상 맞을리는 지금도 만무하지만 엄마의 말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로 작용될 때가 많은걸 보면 엄마가 늘 하는 말인 ‘엄마말 들어 손해볼일이 없다’가 아주 틀린 말이 아닌것 같기도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던 엄마의 잔소리를 나이가 드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엄마가 했던 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엄마 말대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얼굴만 보면 늘 일장훈시 늘어놓는 우리 엄마가 오늘 참 많이 보고프네.
엄마, 민수야, 선물 고마워. 우리 아주 잘 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