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사를 했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 그리고 당연할법한 얘기이지만,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텅. 덩그라니.
식기도 사고.. 식재료도 트렁크 한가득 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우리 엄마도, 그리고 우리 어머님도 수십년 전에 이 길을 걸었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엄마도, 어머님도 이 텅 빈 집안 곳곳에 넣을 물건을 하나 하나 구입하면서 때론 설레이기도 하고 막연히 두렵기도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의 몽오리를 피우며 엄마 둥지를 떠난 아기새는 어느새 어른 새로 조금씩 탈바꿈을 하고 있는듯 하다.

#가구
집 계약을 시작으로 이사 후 가스, 전기, 수도 모두 일일이 등록하고 매주 주말마다 장보고 가구 구입하러 하루종일 집에나가 돌아올 생각을 못한다. 예전에 혼자 살때야 이미 다 차려져있는 밥상에 수저 얹는 꼴로 집주인이 다 꾸며놓은 집에 들어가 살았으니 가구나 식기 살 걱정은 못했는데, 내가 집 마련하는 입장이 되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할 것 투성이다. 어른이 되는거 영 쉽지 않다. 그래도 혼자했으면 무섭고, 힘들고 외로웠을 일들을 반반씩 나눠서 할 수 있고 서로 토닥이며 으쌰으쌰하며 할 수 있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선택
텅빈 아파트. 하나 둘씩 신랑이랑 함께 차곡차곡 살림을 꾸려나가야한다. 다행히 가구를 선택할때에는 의견이 척척 잘 맞아 여태까지는 크게 실랑이 없이 잘 구입했다. 문제는 작은 것들인데, 서로 선호하는 색이나 브랜드가 다르면 약간의 신경싸움을 하다 서로 결정을 미뤄버리기 일쑤다. 책임전가랄까. 그렇게 신경싸움을 하다가도 우리 둘은 서로 눈치껏 알고 있다. 결국 이 아이템은 누가 결정을 해야하는지. 그렇게 결정된 아이템은 후회없이 결제하고, 집에 데리고 왔을때 조화를 이루던 이루지 못하던 묵묵히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아이템 하나하나 신중히 선택했기도하고, IKEA 가구의 경우 신랑이 몇 시간에 걸려 조립했던 아이들이라 집안 어느 가구 하나 애정이 안들어 간게 없다.

#단계나누기
가구 구입은 다달이 단계를 나눠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성급히 결정하지 않고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확인 후 구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번에 큰 돈을 들여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크레딧이 차감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용카도 한도금액의 30%정도만 사용해야 신용크레딧을 높게 유지할 수 있고 지출이 심한 경우 크레딧이 깎일 수 있다.). 1단계인 8월의 가구들은 모두 구입한 상태이고 다음주 주말부터 2단계 헌팅이 시작된다.
1단계:
침대, 메트리스, 식탁과 의자 4개, 소파, 의류 서랍, 신발장, 램프, 컴퓨터 책상
2단계:
컴퓨터 책상 의자, 침대 램프, TV 다이, 커피 테이블, 1인용 소파
3단계:
커피 머신, 믹서기, 화장대, 벽시계
어미새 둥지를 떠나 호주에서 혼자 살 무렵, 그나마 작은 몸 잘챙겨 먹고 살고 했는데 호주로부터 돌아오고 5년이 지난 지금 어미새 둥지에서 주는 음식 받아먹는데 익숙해져 다시 혼자 날개짓을 하려니 머리속이 하얘진듯마냥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 가령 쌀뜨물은 몇번 째 씻은 물부터 조리에 쓸 수 있는지, 양파는 어떻게 보관해야하는 지, 오븐은 broil을 선택해야하는지 bake를 선택해야하는지.. 덕분에 매일 양가 부모님께 전화로 질문을 드리고 있어 관계가 더 돈독해진 느낌이라는. 몇 만리 떨어져있는 친정식구들 한창 자고 있을 시간에는 그나마 네이버라는 온라인 사전이 숙면중인 어미새를 대신하여 도와주니 인터넷 무료 국제전화를 포함하여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 정보와 테크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집안을 꾸려보니 어른들이 일궈온 삶이 얼마나 대단한건 지 죄송하고, 또 감사하기만 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