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쩜 니 아버지랑 그리 똑같니?”
자라면서 엄마에게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엄마는 종종 나의 외모와 하는 짓이 아빠를 빼다 박게끔 닮았다고 말하시곤 했었다. (내가 잘하는 건 본인 닮았다고 하셨으니, 이 말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나랑 아버지를 동시에 비꼬며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을 거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와 보이스톡을 하면서 엄마가 이런 말을 하셨다.
너는 어디서 주워 온 자식인가 보다.”
사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이 말이 나왔던 상황에서는 – 나의 취향이 부모와 어쩜 이리 다르냐는 맥락이었기에 – 딱 맞는 표현이었는데, 통화를 끊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건 단순히 내 부모와 나의 취향 차이를 논하는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또 다르겠지만, 1990년-2000년 초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 그게 합당한 지시건 아니건 – 무조건 행동해야 했었고 (그렇지 않으면 훈육을 받기 일 쑤였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어린 나에게 사회생활의 일환이었던 학교와 학원에서조차도 ‘선생님은 하늘이다’라는 부모님의 지시 아래에 교사가 시키는대로 무조건 따라야했다. 소위 ‘말대꾸’라는건 – 그 상황에 어린 학생이 맞는 말을 했건 아니건 – ‘말대꾸=불량학생’이라고 여겨졌었던 때여서 부모와 교사에게 맞기 싫으면 그냥 묵묵히 시키는 대로 따랐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도 각 학급당 많은 학생 데리고 진도를 나가야하는 상황이니,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거나 질의응답이 이뤄지는 수업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마 내 또래들은 동감할듯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때에 우리는 그저 부모와 교사가 시키는대로 듣고 따르고, 본인의 개성이나 의견을 표할 기회 없이 묵묵히 학교-집-학원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우리는 당연히 가장 많이 따르고 보는 부모의 아바타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데 20살이 되면서부터는 부모님이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연애, 아르바이트, 유학, 직장생활등을 하며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세계 음식들을 접해보고, 직장생활도 해보며 나는 하루하루 부모님의 통제권 밖에서 경험치를 쌓아가며, 스스로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하게되었다. 아마 이런 과정속에서 나는 변하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따라할 수 밖에 없어 아빠 또는 엄마를 빼다 박았던 딸로부터, 순수 내 모습인 ‘진정한 나’로 말이다.
더 이상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상 안에 국한되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고로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고, 아바타마냥 부모님이 입혀주는대로, 시키는대로 살지 않아도 되었으니 부모님 눈에서는 내가 낯선 음식 (여기서 낯선 음식이란, 외국음식. 물론 한식도 당연히 좋아한다)을 좋아하고, 오지로 혼자 여행을 가기 일쑤인데다, 부모님이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척척 도전하니 당연히 본인들과 성향과 취미가 다르게 생각하실만도 하다. ‘주워 온 자식이 아닐까’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사실 어디서 주워 온 것 같다는 표현은 사용하신지 벌써 몇년 됬다. 시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처음 엄마가 그 말을 하셨을 때부터 아마 나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으로부터 조금씩 탈피를 하며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바뀐건 아닐까싶다. 나의 이런 변화가 우리 부모님에게는 섭섭하거나 낯설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려 내가 나다워 지는것 같아서, 너무 좋다. 이제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까지 하고, 신혼 집까지 꾸렸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난 부모님이 더 낯설게 느낄 정도로 더 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서야 외부의 방해와 압박없이 오롯이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마련된 것 같아서 내심 설레이기도 한다.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고등학교 졸업하는 대로, 독립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 때, 시간이 지나 변한 자식의 모습을 보고서는 ‘아, 저게 정말 저 아이의 모습이구나’ – 라고 알게되는 것도 새로울 듯 싶다.
난 앞으로 어떻게, 어떤 사람으로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