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날의 사부작 일상

2017년 봄날의 사부작 일상

4월에는 부활절이 있어 일주일 시댁에 다녀왔다. 매주 통화하는 시댁 식구들이지만 4개월만에 매일 얼굴보니 너무 반가웠다. 신랑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매일 하루종일 혼자있다가 시댁 가족들 보니 덜 외롭고 이렇게 좋을수가! 시댁에 가면 친정집 가듯 마음이 편안하다. 제사도 없으니 명절 준비하러 가는 느낌도 않나고, 외려 시부모님 덕분에 잘 먹고 잘 쉬고 오는데 이 얘길 들으면 과연 우리 엄마는 딸이 시집살이 안한다고 기뻐하실까? 아님 시부모님이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도와드리라고 (애정 담긴, 걱정투의) 잔소리를 하실까? 여하튼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부활절에도 어머님은 부활절 컵케이크를 손수 만드셨고, 시조카들은 부활절 계란 찾기도 하고 부활절 선물도 어김없이 한아름 받았다. 그러고보니 작년 부활절을 맞이해서 이 글을 썼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넘었네. 시간 참 빨리간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연상케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 현장

#이종격투기 

신랑 친형인 시아주버님은 아마추어 종합 격투기 선수다. 분기마다 경기를 준비하는데 이번에도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가 상대 선수가 기권하는 바람에 경기를 뛰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버님은 우리 부부랑 같이 셋이서 관람석에서 경기를 보게 됬는데 오히려 이게 잘 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경기를 이기더라도 맞는 걸 피할 수 없는 종목이다보니 아주버님이 경기를 뛸 때 가슴이 졸여오곤했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오롯이 경기에 집중하여 선수들의 쟁쟁한 경기를 재미있게 관람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사실 이종격투기는 우리 아빠가 골프 다음으로 즐겨보는 스포츠인데 재미도 없고 이 잔인한 걸 왜 매일 시청하냐며 아빠에게 매일같이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작년에 출전한 아주버니 경기를 현장에서 보고는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이종격투기는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이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의사도 상시 대기중이고,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심판이 중지 시키는 등 피 철철흘리며 진행시키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아마추어 경기라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면서 경험하는만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기 마련이라는데, 아주버니 경기를 한번 관람한 이후로는 아빠가 왜 그리도 열혈한 이종격투기 팬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음에 한국갈 때는 아빠 손잡고 프로 시합을 꼭 보러가야지.

아침을 깨우는 새벽 6시, 집 근처 전철역 출근 길

 #미비한 출발

4월부로 한달에 2-3번 토요일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라고 공인인증 영어시험 감독관으로 채용되서 지금 일한 지도 두달이 넘었다. 한달에 2-3번 일하는게 다이지만, 무언가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거라 생각한다. 구직은 2월부로 이력서를 활동적으로 넣고 있지 않다. 구인 게시판을 매주 확인하기는 하는데 내가 일할 수 있는 포지션이 나오면 그 회사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아보고 지원 결심을 하는 터라, 많게는 한달에 1-2곳에 지원서를 넣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내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성장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

아르바이트하는 회사가 있는 샌타모니카

#자신감을 찾아서,

처음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아무리 만전을 기해도 (대게는 몰라서 하는) 실수들을 범하기 마련인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탓인지 작은 지적 하나에도 번갯불이 가슴을 강타한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일하는 처음 한달동안 마음고생을 계속 했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것 처럼,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남들 대부분 쉬는 주말에 나도 쉬고 싶고, 새벽 5시반에 일어나서 일하러 집을 나서는 것도 싫고, 일하는 직원들 중에 나 혼자 외국인 신분이라 왠지 나만 마음을 조급해 하는 것 같고…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계속 자존감을 잃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되서 감사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야할까? 라는 두려움도 좀처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IELTS를 진행하는 어학원에서 교무과장을 뽑는다는 채용공고가 올라와서 지원을 했는데 전화면접과 3:1 패널면접 그리고 필기시험을 보며 최종 3인에 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직무와 직결되는 경력이 없어 오퍼를 받지는 않았다. 신기한건 원장으로부터 면접 내용이 아주 좋았고, (내가 걱정했던) 필기시험도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최종면접까지 간게 어디냐, 미국에 와서 벌써 최종면접까지 두번 가봤으니 채용확정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불합격을 들었던 당시의 심정은 참 비참했다. 필기시험을 자신감 있게 못 본것에서도 스스로 자신감도 많이 잃었고.

그래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사실 학교는 원계획에 배제되었던 부분인데 미국 회사에 지원할 때마다 영작문 시험, 어휘 시험, 문법시험을 보는 곳이 많고, 그 때마다 자신감을 잃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 카페에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 중 근처 전문대학에서 ESL 영작문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된다는 조언을 듣고, 수업 하나 듣는 건 경제적으로나 공부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서 등록을 결심하게 되었다. 국제학생이 아닌 영주권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등록하기까지는 좀 번거로운 과정이 있었지만 무사히 여름학기 수강신청을 마쳤다.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6주동안 거의 매일같이 학교에 두시간 수업을 들으러 간다. 학비는 캘리포니아 주민으로 인정되어 3학점 수업에 138불, 학생 보험까지 합해서 154불이 들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과제 많이 내주고 엄하게 가르치되 정말 잘 가르친다는 분을 선택했다. 한번도 영작문 수업을 배운적이 없는 나에겐 죽을 맛의 수업이 될 수도 있지만 부디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발목잡던 영작문에서 좀 자신감을 갖게 되길 바란다.

위의 종이 안에 수표처럼 생긴 체크가 들어있다

#미국에서의 첫 급여

미국에서의 첫 급여를 체크로 받았다. 신기하게 처음 1-2번은 체크로 주고 그 다음부터는 은행계좌로 송금한다고 들었다. 급여 명세서를 보니 미국에서는 알바생들도 소득세는 아니지만 일련의 세금을 낸다. Employee Medicare (피고용자 건강보험), Social Security Employment (국민연금 비슷한 연금), CA Disability Employment(장애인 고용 보험?) 이렇게 세가지로 몇십불이 총 받아야하는 급여에서 공제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할 때 세금을 따로 냈던 적은 없던것 같은데. 버는 수입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하는게 맞는것 같기도 하고, 얼마 받지 않는 돈에 세금까지 내라고 하는건 너무 한것 같기도 하다. Social Security는 연금으로 들어가는 돈이니 괜찮지만 사보험든게 따로 있으니 왠만하면 피고용자 건강보험은 내기 싫지만 선택사항이 아닌듯 하다. 장애인 보험은 적극 찬성!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다가 시급으로 받는 알바생이 되니 모든 물건들이 다 시급으로 머릿속에 계산이 되고 있다. 미국에 와서는 사실 집안에 필요한 가구나 식료품을 빼고는 불필요한 소비는 안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더 절약해야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건을 사고자 하더라도 ‘이 물건을 사려면 이만큼 일해야하는구나. 지금 꼭 사야하는 물건일까?’ 라는 질문이 생기는데 예전같으면 아무런 고민없이 계산대로 가져갔을 물건들도 필요성을 따지며 좀 더 조심스럽게 구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적금도 매달 들긴했지만 그외에 남은 돈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불필요한데 많이 썼던 것 같다. 가령, 매일 커피를 사마시는 일이라든가 한달에 한번 거금을 들여 손관리(젤)를 받았던 일등. 월급받으며 별생각 없이 소비를 하던 생활패턴에서 최저임금 받으며 일을 하게된건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좋은 계기가 된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대선투표

#대선 투표, 그리고.. 역사 

4월말에는 대선 투표를 하러 한시간 전철을 타고 LA 한인타운에 다녀왔다. 선거하는 순간이 정말 잠깐이었는데 그 잠깐을 위하여 이 먼 거리를 갔나?라는 허탈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시청한 다큐멘터리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투표권리와 각종 자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내용을 들으면서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다. 생각하지 않으면 참 잊고 살기 쉽다. 그래서 읽다 덮어 두었던 다시 역사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자님이 하신 옛말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라고 하신것 처럼 나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또는 잊지 않도록 계속 인지하고) 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배운 삶의 지혜를 잊지 않고 우리 생활에 적용하며 사는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절감한다. 학창시절 때에는 외울게 너무 많아서 뒤에 가서는 포기했던 국사였는데,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찾아 배우려고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5-12세용 미국지도 자석퍼즐

미국 역사도 조만간 읽기 시작해야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를 아는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야 하는데 그 시작을 미국의 주와 각 주의 수도들을 외우는것으로 정했다. 학창 시절 지리시간에 열심히 지도 그리며 한국지도를 외웠었는데 미국은 그리기엔 너무 크고 주도 많아서 퍼즐로 외워보려한다. 50개의 주와 각 주의 수도, 유명한 특산품이나 동물들까지도 외워야 하니 갈 길이 멀지만 간간히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외워지지 않을까?

주어진게 시간인 요즘 – 사실 이렇게 지낸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 내 인생에서 언제 다시 돌아올 지 모르는 이 여유로운 시간들을 잘 활용해서 구태의연하지 않고 하루에 20분만 시간을 내어 책을 읽든, 외국어를 공부하든, 온라인 수업을 듣든 무언가 조금씩 꾸준히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지금 이 고독한 시간들이 언젠가 값을 잘 치루길 바라면서. 🙂


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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