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살색은 영어로 뭘까?

미국에 온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풍경, 장소가 많아졌다.

낯설다는 느낌은 가끔 가보지 않은 동네를 제외한다면 평소에는 이제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제법 적응을 하고 있다는 뜻일까. 그러나 때때로 버스 또는 전철 안에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확 드는 찰나에 눈 앞에 보이는 외국인이 시야에서 줌인(Zoom-in)하듯이 엄청나게 부각되어 들어올 때가 있다. 왜, 영화에서 갑자기 배역들에게 클로즈업 되듯이 말이다. 그 잠깐의 사이에 ‘어? 외국인이네’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데, 정신을 다시 차리고 보면 사실은 이 미국땅에 온 지 얼마 안된 내가 진정한 외국인이 아니던가. 이럴땐 나혼자 멋쩍은듯이 웃고 넘어간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정말 많은 다민족이 모여 사는 곳으로 손에 꼽히는 곳 중에 한 곳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 안에서도 특히 다양한 배경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한 대도시들이 있는데, 그 도시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나는 내가 종종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또는 누가 외국인이고 누가 현지인인지 구분이 안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사실 누가 이 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고, 누가 외국에서 태어나 넘어온 이민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서로에게 피해를 안끼치는 선이라면 자유롭게 언행과 행동을 해도 되는 분위기이다. 외모가 다르다고해서, 대중과의 의견이 다르다고해서 눈길질을 당하거나 손가락질을 받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다는 조건하에 타인과 ‘다름(difference)’이 이 곳 사람들에게는 전혀 불편한 요소가 아닌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대도시에서 나는 하루하루 다양성을 배경으로한 ‘서로 다름’이란 개념을 수용하는, 아니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지난 어언 2년간 나름 큰 무리 없이 이 다문화속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었었는데, 우연치않게 아래 2001년에 대한민국 공익광고 대상을 수상한 작품(아래 이미지)을 보고 정말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 운전법에 ‘양쪽 뒷자석 창가쪽’을 가리키는 말로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이라는게 있다. 직역하자면 ‘놓치기 쉬운 시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사이드 미러로는 확인이 안되는 구역이라 차선을 바꿀 때에는 백미러, 사이드미러를 확인한 후에 마지막으로 꼭 고개를 뒤로 돌려 이 블라인드 스팟을 확인해야하는 규정이 있다. 이 포스터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여태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화적 맹점(Cultural Blind Spot)‘을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

살구빛이 도는 색은 당연히 ‘살색’이고, 영어로는 ‘Skin Colour’라고 생각해왔는데 한국어의 <살색>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단어라고는 한번도 생각치 못했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이 포스터를 보고 이렇게 까지 충격에 빠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큰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않은 채로, 나는 미국인인 신랑에게 위의 살색 크레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영어로 무슨 색이야?”
“글쎄, 태닝된 색(Tanned colour), 베이지색(Beige Colour)라고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연한 주황색(Light Orange Colour)이나 살구색(Apricot Colour)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같고. “

그리곤 위키백과 한글판을 찾아봤다.

살색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피부색을 부르는 말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일본과 함께 황인종의 피부색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살색이라는 단어가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한국기술표준원의 관용색에서 제외됐다.

2001년 8월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종 차별이라는 한 시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한국기술표준원에 ‘살색’이란 색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다. 2002년 11월 한국기술표준원은 기존의 ‘살색’이란 표준 관용색 이름을 ‘연주황’으로 바꿨다.

2004년 8월 초중등학생 6명이 연주황의 이름을 쉬운 한글로 바꿔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여, 2005년 5월에 다시 살구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렇게 살색에서 연주황색, 연주황색에서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위키백과 영어판에서 해당 색상은 Apricot(살구색)이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위키백과까지 찾아보니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살색은, 이제 한국의 학교에서는 살구색으로 가르치고 있구나.. 그래 황인종만 있는게 아니니까 살색으로 명명하는건 잘못됐지..’, ‘휴, 이 공익광고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자식들에게 저 색을 살색(Skin Colour)라고 가르칠뻔했네.’ ‘만약 누군가 살색(Skin Colour)이 뭐냐고 물으면 다양한 답이 정답이 되어야 하겠네.’

미국인과 결혼한 다문화 가정의 한 일원으로서, 또 이 다민족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살려면, 앞으로 다문화, 소수민족 및 다양성등에 더 관심을 갖고 정보를 찾아보는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해서, 또는 출신지가 달라서 차별을 받아서는 절대 안된다. 현지인/외국인, 과반수인종/소수인종, 화이트컬러직/블루컬러직… 같은 인권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을 수천개의 다른 카테고리로 나누는 이 시대에서 차별은 우리 모두가 특별히 큰 관심을 갖고 조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분에서 실수할 수 있었던 단순한 ‘색’의 정의가 많은 생각과 깨우침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나의 무지로 문화적 맹점을 더 겪을 수도 있겠지만, 부디 가급적이면 일어나지 않도록, 행여 피치못하게 일어나더라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갖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차별시키고 있는건 아닌 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이미지출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내용출처: 위키피디아(한글), 위키피디아(영문)

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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