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마음이 갑갑하거나 화가 날때면 어느 순간부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쉽게 화가 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일단 한번 화가 나면 자꾸 생각나고 진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때엔 어김없이 청소를 한다. 전 직장에서도 화가 나거나 무슨 이유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청소를 하곤 했는데, 가끔은 도를 지나쳐 오전 내내 청소만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간 날도 있었다. 내 자리부터 시작해서, 빈 책상, 탕비실,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든 무언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일을 해서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리고 다 잡아야 비로소 오후에나마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나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청소를 자진하여 하는 경우를 빼고는 청소는 나에게 늘 골치거리였다. 자랄 때는 몰랐지만 내 보금자리를 직접 꾸려보니 우리 엄마는 정말 한 깔끔하는 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매일같이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았던 엄마 밑에서 자라다보니 청소는 매일 해야하는걸로 인식되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를 ‘청소 잘 안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청소를 매일 하지 않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받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스트레스는 그 다음 청소를 하는 날까지 먼지 쌓이듯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언 30년가까이를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 시댁에 어머님이 청소를 일주일에 한번하시는 걸 보고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그 이후로 나도 일주일에 한번만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청소는 더이상 나에게 골치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분가한지는 벌써 몇달이 지났지만 나는 요즘도 어머님을 따라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에 대청소를 한다.

무의식적으로 쓸고, 닦는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오롯이 그 일에만 집중하게 되어 잡스러운 생각의 부스러기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 생각이 비워진다. 그리고 종차엔 늘 그렇듯 심중 구석구석 낀 먼지까지 다 세척된것 처럼 아주 개운하다. 그리고 비워진 생각을 틈타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르며 추억에 잠시 젖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청소하는게 더이상 귀찮지 않고 – 물론 일주일에 한번이라는 횟수로 귀찮아질 수도 없지만 – 오히려 즐겁다. 청소가 끝나면 생각도 정리될 뿐더러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주를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번 주 월요일은 신랑이 집에서 일을 한 관계로…하루 늦은 화요일인 오늘이나 되어서야 청소를 하게 되었다. 청소를 해야 하는 와중에 블로그를 잠시 하는 이유는, 블로그에 올릴 초안만 잔뜩 늘어가고있고 정작 글을 완성시키지 않는 게으름을 한동안 피웠는데.. 짧은글이라도 완성시키면 블로그에 조금 박차를 가할 수 있을까 싶어서이다.


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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