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를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며느리

혼인신고를 한 작년 2015년 가을.

시부모님께 보낸 이메일에 어머님이 답 이메일을 주셨는데, 이메일 하단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으니, 그냥 우리 이름(스캇, 샌디)으로 부르렴.
Now that we are family just call us Scott and Sandy. We are pretty casual. 

-사랑을 담아, 샌디로부터
Love, Sandy

여태까지 Mr. (성), Ms(성) 라고 불렀었는데… 이름을 부르라고?!?! 하… 오마이갓. ㅠㅠ 나름 20세부터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호주에서도 몇 년 있었고, 일했던 전직 회사에서도 외국인 직원 및 고객들과도 일을 많이 해봐서 나름 서양문화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었고 여지껏 별다른 큰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시어머님, 아버님을 그분들의 이름으로 부르라고…..!? 이건 내 20대 최고의 문화충격이지 아닐까 싶다.

이래서 신랑이 혼인신고하고 우리 엄마를 이제부터 ‘옥자’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본거구나. 당시 신랑한테 기겁하며 엄마 이름을 불러선 절대로 안된다고했는데,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했나 싶었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문화 차이의 시발점인것인가.

여하튼, 어머님께 이메일을 받고 그 뒤로도 계속 안부를 묻고 지내며 연락을 했지만 난 어른께 이름을 부르는게 익숙치 않아서 어머님께 그 이메일을 받은 이후로는 아버님/어머님께 보내는 이메일에는 아무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이메일은 그냥 Hello! 라고 시작했다. ㅋㅋㅋ ㅠㅠㅠ 결국 어머님께서 내 생일에 보내는 이메일 하단에 다시 한번 본인 이름을 부르라고 써서 보내셨다.

즐겁고 좋은 한 주 보내렴! 생일 축하 한다! 그리고 우리를 편하게 스캇과 샌디라고 불러주렴. 이제 우리는 가족이잖니.
Have a great week. Happy Birthday! Enjoy your week. Please feel free to refer to us as Scott and Sandy. We are family now.

– 사랑을 담아, 샌디로부터
Love, Sandy 

사실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 직전까지도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니, 신랑 고향인 미국에서는 어떻게 호칭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찾아본 적도 없었다. 이메일을 받고 신랑한테 부리나케 전화를 해서 받은 이메일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 호칭 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그리고 신랑 부모님을 아빠 엄마 라고 부르면 안되냐고 말도 안되는 때를 썼다.

왜 우리 엄마 아빠를 너가 엄마 아빠로 불러? 너 엄마 아빠는 따로 있잖아. 그냥 울 엄마가 말한대로 이름으로 불러. 부르다보면 익숙해질꺼야.”

아이참. 됐어. 전화 끊어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신랑과의 통화를 그렇게 끊고 우선 인터넷 사전과 검색엔진을 통해서 어머님/아버님을 검색했다. 검색의 결과는 참혹했다. Dear Mother (친애하는 어머님), One’s father(누군가의 아버지)…뭔가 말이 안되는 직역 답변들. 그렇다고 미국식 격식과 한국식을 합쳐 Mr.Dad/ Mrs.Mom 이라고 부르는것도 정말 아니지싶었다. 그리곤 그날 처음으로 국제커플들의 블로그들을 이리저리 찾아서 기나긴 검색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블로그들의 이야기를 보니, 두가지 타입이 있는데;

첫번째) 시댁 문화에 모든것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는 형’

두번째) 시댁 부모님의 한국/아시아 문화 이해정도에 따라 한국인 며느리의 요청으로 시댁부모님을 ‘엄마/아빠(Mom/Dad)’로 부르는 형. 이 경우, 시댁 식구들이 이미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외국 문화에 개방적이고, 한국에 적어도 한번 혹은 그 이상 놀러 왔었으며 결혼 전부터 이미 며느리와 시댁간의 관계가 두터움.

나의 상황으로 말하자면…. 혼인신고하기 1년 반전에 미국을 휴가차 지금의 남편과 방문했으나, 그 때 당시는 정식으로 사귀고 있지 않은 사이였으므로(당시 신랑은 나를 본인 가족에게 친구도 아닌 직장동료로 소개했다) 울 시부모님은 내가 며느리가 될지 상상도 못하셨을 터. 그 때 만나뵙고 땡이니 시댁과 가까운 관계도 아니고, 시부모님 해외여행도 안다니시고 시골에 사는 이유로 외국인과 접할 기회도 많이 없으신 분들이다. ㅠㅠ 그렇다면 나의 상황은? 두번째는 확실히 아니니 첫째 사항에 해당되시올시다. ㅠㅠ 어쩔수없다. 남편도 울 부모님 호칭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불러주니, 나도 미국 시부모님께는 미국법을 따라야지.

하여, 이메일 답변으로 그간 왜 이름을 부르지 못했는지 말씀드리고, 어머님께 어른들을 이름으로 부르는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름으로 부르는게 개인적으로 어색하고 어렵지만 앞으로 이름을 부르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리고 몇 차례 이어진 이메일에서는 이름을 불렀다. 사실 이메일 상에서는 실제로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고 적기만 하는거니, 시부모님 이름을 몇 번 써보니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느낌은 물론 아직 이상했지만.


2016년 3월, 드디어 혼인신고하고 시부모님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뵜다. 회수로는 총 두번째!

지금 미국에 도착하여 시댁에 머무른지 두달 째. 과연 나는 시부모님 이름을 부르며 잘 지냈을까? ㅋㅋㅋ  첫 한달 동안은 왠만하면 이름을 부르지않고 완전 가까이 다가가서 용건만 말했다. ㅋㅋ ㅠㅠ  하지만 이내, ‘한다고 마음먹으면 뭐든 못하리, 한다면 하는거지. 지금 익숙해져야 평생 편할것같다.’ 라는 생각에 한달째 접어 들어갈때부터 어머님 아버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젠 시부모님 이름 부르며 용건도 곧 잘 말하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편안한 얼굴로 말을 하는것처럼 보이지만..시부모님 앞에선 나는 여전히 두 손은 공손히 모으고 있고 편안한 얼굴뒤에는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있는 한국인 며느리이다. 시어머니/시아버지 너무너무너무 인자하고 좋으신 분들이지만 며느리로서 어느 정도 긴장의 끈은 갖고 있어야 명절때마다 추-욱 느러지지않고 빠릿빠릿 잔 일 도와드리는 부지런한 며느리가 될 수 있을것 같아서다. 우리 시부모님 성격으로봐서는 명절 때 마다 내가 소파에 누워있어도 아무것도 안시키고, 꾸중도 안하고 본인들이 일 다 하실 분들이라서 특히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있는것은 좋을듯 싶다.

참, 여기 미국에서는 시부모님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관계 사이에서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엄청 편하긴 하다. 형님, 올케, 도련님, 올케, 처남, 아주버니 제수씨 등등… 호칭 외울 일도 없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 되니 편하고, 존댓말도 안쓰고 격식을 차리지 않으니 왠지모르게 더 친한 느낌이다. 아래 관계는 호칭을 부르지 않고 모두 이름을 부른다.

1. 시아버지/시어머니와 사위/며느리 지간
2. 나와 새아버지/새어머니와 지간 
3. 형님, 처남, 매형, 아가씨, 올케, 시누이, 동서, 매부 등등 
4. 친구 부모님과 나 (처음 만났을때는 존칭을 쓰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이 첫만남에서 편하게 본인 이름을 부르라고 함)
5. 얼굴 튼 이웃 아주머니/아저씨
6. 나이 좀 차이나는 친구

학교 선생님은 한국과 달리 선생님(Teacher)으로 부르지 않고, 스미스님(Mr. Smith, Miss Smith, Mrs. Smith등)으로 성에 존칭을 붙여 부르는데, 대학교에서는 스미스 교수님(Professor. Smith)과 같이 ‘교수님+성’을 붙여 부른다고 한다.

참고로 남편에게는 어머님/아버님 호칭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어디 드라마에서 배워왔는지 자연스럽게 우리 아빠는 ‘아버님’, 그리고… 우리 엄마는 ‘엄마님’이라고 부른다. ㅎㅎㅎ 신랑 발음할때 강세가 ‘엄’자에 있는데, 귀여워서 ‘엄마님’이 아니라 ‘어머님’이라는것은 굳이 고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랑은 지금도 울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나 카톡에는 엄마님이라고 부른다. ㅋㅋㅋ

생각해보니 전 직장에서도 특이하게 영어이름+님을 붙여 불러야했는데, 첫 달은 그게 아주 어색하여 왠만하면 호칭을 부르지 않았었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상사분들의 이름은 더더욱이 어색해서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어려웠던 호칭은 1년, 2년..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우리 시부모님을 본인들 이름으로 부르는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지길 기대해본다. 지금은 약간 덜 불편해졌지만 아직도 어색해 죽겠다. 그 날이 빨리 오길!


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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