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6년 6월 14일 수요일 자정.

이틀 전인 12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 게이 나이트 클럽에서 인질극과 함께 총사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친 가운데 연일 미국 언론들은 하루 종일 이 사건을 다루며 9-11테러 이후 최악의 테러이자 미국 총기 난사 중 최악의 사건이라고 전하고있다. 어제 엄마랑 통화를 하긴 했는데 이 총기사건 뉴스를 아직 접하지 않으신건지 아님 캘리포니아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으셨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님 모름지기 엄마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가 걱정할까봐 모른척하셨던걸까) 가까이 옆에 두고 보지도 못하는 딸이 허구한 날 총기사건이 잇따르는 먼땅에서 산다고 또 근심 걱정 가득한채 처연한 기분으로 어제 오늘을 보내셨을까봐 내심 우려했던 마음은 잠시 내려놓았다.

한국에서 정치, 사기, 묻지마 살인사건, 형제 혹은 가족간의 불화로 일어나는 참사가 뉴스에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락 내리락 한다면, 미국에서도 역시 정치(특히 요즘은 2016년 대선) 그리고 조금 다른 부분으로 자동차 사고, 자연화재 그리고 총기사건이 주로 화두로 다루어진다. 이렇게 사건사고가 매일 뉴스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특히 이렇게 큰 총사사건이 일어날때면 평소처럼 초연하게 있기도 어렵다.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일주일 뒤, 어머님이 혹시 내가 만에하나 사고를 당해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되면 어떻게 우리 부모님께 전해야하는지를 물어보셨다. 하기사 결혼식도 안해서 양가사이에 왕래도 없으셨고, 우리 시부모님은 한국어를 모르시고, 우리 부모님은 영어를 모르시니 미국에서 나의 법적 보호자인 어머님 입장에서는 궁금했을법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님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은지 세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어머님께 답을 못드리고있다. 남편도 한국어를 잘 못할 뿐더러,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 시부모님께 긴급상황 연락처를 주어도 되냐고 불특정 내 친구(혹은 지인)에게 부탁한다는것 자체가 나는 너무 부담스럽고 생각만해도 있지도 않을 죽음을 예고하고 준비하는것 같아 무섭다.

나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기보다,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고 싶다. 행여 죽음의 문턱에 있어도 후회없도록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매일 사건사고가 밥먹듯이 일어나는 지금 시대에 살면서 감사한 마음만을 갖고 살기란 비현실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혹시 모를 죽음을 준비하는게 현명한걸지도. 어머님이 던지신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건 남겨질 수 있는 가족들(특히 친정식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걸까?

#범사에 감사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나의 학창시절을 그리워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뫼비우스의 띄처럼 반복되는 생활패턴에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기약없는 미래와 대학진로의 고민으로 번뇌하던 시절이 그리울리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신기하게도 나는 그 괴로웠던 학창 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다. 처음이다.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다. 매일같이 맛있는 반찬이 바뀌어 밥, 국과 그리고 디저트가 영양소와 염도까지 안성맞춤으로 꼬박 꼬박 나왔던 학교 급식이 너무 그립고, 무엇보다도 나의 절친들을 매일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단게 너무 가슴아리도록 보고프다. 왜 그때는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지금은 모두 각자 삶과 일에 바빠져 그나마 주말에 보려면 몇 주 전에 만남을 약속해야하고, 이제는 나의 이민으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내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 감사하지 않았던 과거의 일상들이 지금 나에게는 너무 그리운 존재와 추억으로 되어버릴 줄 10년전에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지금 블로그를 시작한지 2개월이 된 시점에서 나의 일상하루 이야기가 다시 나의 10년전 뫼비우스의 띄처럼 특정 사이클을 번복하며 지루한 이야기로 변태되고 있는것 같지만 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설사 아무도 없다할지라도 이 블로그를 계속 이어나가며 나의 한 주를 돌아보고 감사한 마음을 각인시키고 싶다. 나의 감사한 마음으로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가 내 글을 읽는 그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단순히 미국이민이라는 미화되기 쉬운, 듣기 좋은 배경음악을 깔아 놓는 블로그가 아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 사람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블로그를 방문하는이들과 좋은 정보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밝고 긍적적인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총기사건이나 주변에 일어나는 비극들을 통해 받는 자극으로 삶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게 아니라, 익숙해져버린 우리의 일상을 매일 새롭게 바라보며 감사하는 일이 행복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당연하리라 생각했던 대상들의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이상의 다부진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순간 불평하는 것들도 5년뒤, 10년뒤, 20년뒤에는 소중한것들로 기억될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반복되는 일상이야기 로그를 남긴다.

2016년 5월 셋째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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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문을 여는 날씨 – 평균 40도. 이겨내보자. 물 많이 먹고.

자선 마라톤 행사 자원봉사하러 가는 새벽, 고속도로 위에서. 힘찬 하루를 보내라고 하늘이 화이팅을 외치는것마냥 아름답다.

완주점에서 완주기념메달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맡았던 자원봉사 현장. 꽤나 무거웠던 쇠 메달 한가득 팔에 얹히고 포즈 몇 번 잡아보았다. 아버님과도 한장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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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팀과도 기념사진 한장 남기기. 나의 아담한 체구는 학생들 사이에 잘 블랜딩 된것같다고 믿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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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매일매일 (이를 갈며) 운전 연습 최소 한시간씩 하고 있다. 주차가 가장 어려웠는데..처음으로 한번에 완벽 주차 성공. 촌스럽게 사진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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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발견한 한국 매운양념, 고추장 소스, 한식 양념. 한인 2세가 LA에서 만들어서 판매하는 소스라는데 하나에 8천원. 그냥 사진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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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쁘게 인사하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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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뒷마당 한켠에는 시멘트를 깔던 1991년의 날의 기록도 있다. 가족들의 이름과 발도장 까지. 너무 이쁘고 소중한 기록. 시조카들이 시댁에 올때마다 본인 발 사이즈를 발도장 위에 대보곤 한다.

이번 주 먹은 식단들: 핫윙은 신랑 친구와 만나 셋이서 먹었는데 정말 소스 아낌없이 뿌려주고 살점도 엄청 많은 핫윙이었다. 내 인생 핫윙이랄까. 한시간 걸려 찾아간 한국식당에서는 정체모를 냉국수와 비빔밥을 시켜먹었는데, 신랑의 선택이었던 비빔밥은 맛있었지만 냉국수는 정말 돈이 아까울정도로 맛이 너무 없었다. 겨우겨우 꾸역꾸역 먹고 나왔다. 간장을 물에 풀고 고추기름 몇방울 떨어뜨린 맛이었음. 새콤한 냉면을 생각했던 나는 대실망. 그래도 한국식당이 어디냐. 다음엔 나도 비빔밥 시켜 먹어야지.  다음날 저녁은 신랑이 만들어준 파스타. 이미 모두 조리되어 냉동된걸 해동했다는건 안비밀. 그래도 정성껏 차려준게 감사감사.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인앤아웃 버거.

미국에와서 두번째 해먹는 음식인데,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식 집밥이기도하다. 만드는 과정은 정말 간단한데, 오븐용 투명비닐봉지에 당근, 감자, 양파를 큼직큼직하게 채썰어 넣고 마트에서 파는 고기 덩어리 및 소스와 함께 봉하여 오븐에 2시간동안 두었다 꺼내면 완성. 전동식 칼로 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내어 내놓으면 각자 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고기와, 양념이 잘 베긴 야채들, 샐러드, 빵을 덜어서 먹으면 된다. 한국에도 전동식 칼이 있었나? 워낙이 고기는 정육점에서 모두 모양새나게 잘 썰어주니 아무래도 있어도 쓸일이 없으려나. 한국식 가위로는 해결안 될 고기사이즈, 전동식 칼이 있어 다행이다.


이번 총사사건에서 사용되었던 AR-15 총기는 지난번 미국에 방문했을때 사격장에서 내가 사격연습을 했던 종류이기도하다. 한창 미국에서 이것저것 시도하기에 맛들려 사격연습도 난생처음 해본다고 들떠있었는데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총격 소리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고 사지가 후둘거려 사격을 하지 않겠다고 당시 친구사이였던 남편과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언제 미국을 방문하여 사격연습을 해보겠냐며 죽을 각오를 하고 방아쇠를 겨우 당겼었다. 귀마개를 두겹이나 사용했는데도 천장이 무너질듯한 그 총성소리, 지금도 생각하면 다리가 후둘거린다. 절대로 잊지못할 소리다. 그 나이트 클럽에서 그 무시무시한 총기에 죽음을 맞이했을 49명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면 먹먹함이 근엄하게 심장을 누른다. 유가족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며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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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na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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