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2일 새벽 5시 45분,
밀려오는 피로감을 누르고 거실로 힘겹게 나가 긴 하루를 앞두고 어떻게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요거트 한 개를 꺼내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넣었다. 오늘 펼쳐질 하루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의미여야하는 지, 그리고 내 인생에서 어떤 지표로 작용할지는 도통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인생에 한번만 있을 중요한 날임은 무의식적으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 날을 위해서 준비했던 지난 10여 개월이 머릿 속에 필름처럼 스쳐지나간다.
미국 시민권 준비
미국에 입국한 지 3년이 좀 넘었을 때 나는 미국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증빙서류를 다 모을 수 있게 된 작년 3월, 나는 이번에도 이민법 전문 변호사 도움없이 혼자 미국시민권 N-400 청원서를 미국이민국에 제출했다. 영주권 신청 때와는 달리 신청서와 관련 증빙 서류를 모두 온라인으로 제출이 가능하였기에, 평소 스캔을 해둔 서류들을 선택해서 올리고, 온라인 청원서 정보를 기입하는데까지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신청서를 낸 다음날 부터는 시민권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시민권 제출 문제는 총 100문제로, 30페이지 안팍의 책자에 예상문제가 다 담겨져 있다. 이 100문제만 사실 달달 외우면 되기때문에 시험준비는 벼락치기로도 가능하지만, 내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받는 시민권이기에 이 기회를 빌어 제대로, 꼼꼼히 준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시민권을 받고난 후에 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시민권을 받은 직장동료 S는 내가 시민권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에, 그가 사용했던 시민권 시험준비 책자를 아무런 대가없이 나에게 선뜻 주었다(정말 고마워!!). 그 덕분에 나는 하루에 한페이지(문제 4-5개)를 가볍게 읽으며 관련한 사항들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좀 더 깊게 팠고, 그렇게 주중에 매일 한페이지씩 읽었더니 한번에 몰아 공부할 시간을 따로 빼지 않고도 한달 반정도 되니 책자 내용을 이미 다 간파할 수 있었다. 시험책자 학습이 끝나고는, 두 개의 미국 역사책을 추가로 읽었다.
Biometrics
청원서를 내고 일주일 후 우편으로 Biometrics를 받으라는 안내서를 받았다. 장소는 영구영주권 신청할 때와 같은 장소였고, 이번에도 대기 인원이 없어 10분안으로 일처리가 끝났다. 기본 인적사항 기재하고, 사진과 지문을 찍고 새로 업데이트 된 시민권 시험 준비 책자를 받았다. 책자 안에는 현재 대통령, 부 대통령, 하원의장의 이름이 기재된 종이가 추가로 들어있었다. 새로운 시험책자를 받고는 기존에 직장동료 S가 서슴없이 내게 물려줬던 책자는 잘 돌려줬다.
시민권 인터뷰
인터뷰 고지서에 안내된 시간은 오전 11시 반이었다. 다운타운에 있는 거대한 USCIS 건물에 들어가서 보안검사와 등록절차를 거친 후 인터뷰 대기실에 앉으니 시계는 어느덧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블로그 글을 참고했을 때 대부분의 대기시간이 30분 안팎이라고해서 11시 반 전후로 내 이름이 불리겠지 했는데, 왠걸, 내 이름이 호명되기까지는 무려 한시간 반이나 걸렸다. 12시반이 다 되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보안유리문 앞엔 작은 체구의 인자한 웃음을 띈 동양인 아주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문 건너에 있는 이민국 사무실은 여느 회사 사무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공간 가운데는 파티션이 넓직하게 나눠져 있었고, 서류를 담은 듯한 뚜껑이 상자들이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었다. 나의 인터뷰를 담당한 이민국 직원을 따라 가니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그녀의 작은 오피스 안에 도착했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뒤에 가득 쌓여있는 두꺼운 파일더미에서 10cm정도 두께로 보이는 내 파일 바인더를 꺼내왔다. 비로소 그녀가 준비가 된 걸로 보일 때 나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밝은 미소로 반갑다고 말하며 정중히 악수를 청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사실만을 말할 것인지를 묻기 위해 그녀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는데… 아뿔싸. 그녀의 영어는 웅얼거림이 심하고 목소리 마저도 작아서 정말 x3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준비를 잘 해왔고, 숨길게 없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차분함을 유지하며 동시에 알수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녀의 요청대로 오른손을 들어 맹세를 하고 착석하니, 그녀는 컴퓨터를 보면서 바로 1차 관문인 미국 정부 및 역사관련 퀴즈를 냈다. 이 때 이민국 직원은 총 10문제를 구두로 물어보게 되는데, 청원자는 이 중 6개 이상을 맞춰야 통과하게 되고, 만약 6문제를 다 맞추면, 담당 직원은 10문제를 다 묻지않고 그치게끔 되어있다. 나는 연속해서 6문제를 다 맞춰서 질문은 6개에서 그쳤다. 담당 직원은 내가 답한 내용을 빼먹지 않고 모두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녀가 내게 물은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What are the two parts of US congress?
2. What di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do?
3. Who makes federal law?
4. Name one war fought by the United States in the 1900’s.
5. Why does the flag have 50 stars?
6. What is the nam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now?
그 다음 관문은 Reading과 Writing이었는데, Reading 문제는 태블릿에 쓰여진 “Who lives in the White House?” 를 읽는 거였고, Writing 문제는 태블릿에 감독관이 불러주는 문장인 “The president lives in the White House.”를 태블릿 펜으로 적는 거였다. Reading과 Writing 관문이 끝나자, 이민국 직원은 “Have you ever -?”, “Are you-?” 질문들을 구두로 한 약20개 정도 물었다. 그녀의 발음이 도통 알아듣기 어려워서 나는 환언을 계속하며 내가 이해한 문장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며 답을 해야만 했다. 어떤 질문은 Yes로, 어떤 질문은 No로 대답을 해야했기에 답을 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직원의 질문이 거의 종국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던 찰나, 이민국 직원은 내게 청천벽력같은 요구를 했다. 그것은 바로 스티븐과 내가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하라는 것. 그녀는 3개월안으로 공동명의로 받은 차량보험청구서, 공과금 우편등을 요구했다. 엥? 그런 내용은 고지서에 없었는데?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가져오라는 서류(영주권카드, 시민권 배우자의 출생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는 다 가져왔고, 함께 살고 있는 3개월 안으로 받은 증빙서류를 가져오라는 내용은 고지서에 안내되어있지 않아 별도로 준비하여 가져온 게 없어요.” 그랬더니, 그녀는 다소 냉랭한 목소리로 “고지서는 모든 사람들한테 일방적으로 나가는 거라서 아주 General한 정보만 나와있을 뿐, 그 외에 추가적으로 요청받을 수 있는 서류를 알아서 준비하는 건 청원자의 몫이자 책임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내 시민권 청원은 반려가 되는 건가, 아니면 추가서류요청으로 승인이 지연되는 걸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멘붕이 되는걸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히 그녀에게 “거주 증빙서류를 챙겨오라고 안내가 되어있었으면 가져올 수 있었는데 별다른 내용이 없어 가져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안내된 서류들은 모두 가져왔는데 확인해보시겠어요?”라고 말하고, 바로 이어 “다른 청원자들은 안내서에도 없는 서류를 다 잘 챙겨오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대부분의 청원자는 변호사와 함께 오기 때문에 잘 챙겨온다고 아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서류를 보며 답했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는게, 인터뷰 대기실에서 변호사 없이 있었던 사람은 나밖에 없어보이긴 했다. ㅠㅠ 그녀는 이윽고 말하기를, “아무래도 제가 요청하는 서류가 전혀 없는 것 같네요. 좋아요, 그렇다면 둘이 최근 3개월간 같이 찍은 핸드폰 사진 3개를 제가 바로 볼 수 있게 이민국 홈페이지의 본인 계정에 접속하셔서 지금 바로 올려주세요”.
‘헉. 우리 둘이 같이 사진 잘 안찍는데…최근 3개월에 같이 찍은 사진이 있긴 한가?!?!’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나의 예상대로 3개월 내에 둘이 찍은 사진은 집에서 스티븐 생일 기념 차 찍은 셀카가 한장밖에 없었고, 그 외에 둘이 사진에 들어가있는 거라고는 10월에 큰시누가 집에 놀러왔을 때 셋이 같이 찍은 사진 한장 뿐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내 핸드폰 사진앨범을 보여주면서, 주말에 어딜 가지 않고 주로 집에만 있기때문에 같이 사진 찍을 일이 없어 사진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고, 둘이 생일날 같이 찍은 사진 하나는 찾긴했는데, 다른 하나는 가족이 한명이 더 있는 사진인데 이걸로도 괜찮은 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인터뷰에 그녀도 지쳤는지, 알겠다며 – 그렇게 그렇게 두 개 사진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올릴 사진을 겨우 허락(?)받았는데 왠걸,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민국 건물 안 LTE 속도는 너무도 느렸고, 나는 겨우겨우 이중보안 과정을 거쳐 어렵게 로그인을 했다. 그런데…어느 메뉴를 눌러야 서류를 올릴 수 있는 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번도 핸드폰으로 서류를 이민국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직원에게 내 핸드폰을 보여주며 어디를 눌러야 서류를 업로드 할 수 있는지를 물으니 자기도 모른댄다…내가 핸드폰에 집중하여 땀을 흘리고 있을 때, 그녀는 내 결혼이 진실된 결혼인 지를 묻는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퍼부어댔는데(둘이 명절 때에는 뭐하냐, 캘리포니아 외에 타주나 외국으로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냐,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먹었냐 등), 나는 이 사진들을 올리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말 허술하게 대충대충 대답을 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진을 올리는 탭을 겨우 찾아냈고, 올리고자 한 두 사진을 선택하여 Upload 버튼을 눌렀는데, 사진이 업로드가 안되고 Loading상태에서 몇분째 멈춰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망할 인터넷…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는지 이민국 직원도 사진이 아직 올라오지도 않았음에도, 건물 안 인터넷이 좀 느리다며, 내일 즈음에는 사진이 올라갈거라고 확언하면서, 지금 승인을 내주겠다며 – 갑자기 시민권 시험을 통과했다고 축하한다고 내게 서둘러 악수를 청했다. 그리곤 이름을 바꿀것인지를 묻고, 이름을 바꾸는 서류에 디지털 사인을 하게 한 다음, 시민권 시험을 통과했다는 합격 서류 한장을 성급히 건네주었다.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사히 인터뷰가 끝나 안도의 숨을 쉬며 나왔고, 건물 밖으로 나와 인터넷이 잘 잡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나는 사진 업로드가 아직도 로딩중인걸 확인하고, 사진 2장을 새로이 업로드했다. 다음 날, 시민권 청원서가 승인되었다는 안내 이메일과 문자가 날라왔고, 정확히 2주 후에 선서식 일정이 담긴 우편이 도착했다.

선서식
선서식 당일, 우리는 새벽 6시반에 서둘러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였지만, 주중 출근시간의 교통체중과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에 주차를 해야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서 우리는 일찍 출발하기로 한거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새벽 6시반에 다운타운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전혀 막힘이 없었다.
주차를 하고 나니 정확히 7시였다. 우리는 컨벤션 센터 안에 들어가 특정방향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따라 이동했고, 오늘 선서식이 진행되는 곳 입구에 다다랐다. 미국 이민국은 오늘 시민권 취득을 하게 되는 Applicant와 그들의 가족/지인들을 Guest로 나누어 보안검사를 하고 있었고, 안내에 따라 스티븐과 나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보안검사를 받았고 (음식 및 노트북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생수병의 경우, 개봉이 안된 생수병만 허용한다. DSLR카메라는 확인 작업을 하긴 하지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안내에 따라 나는 청원자 체크인 절차를 밟기 위해 다시 한번 줄을 섰다.

한쪽 벽에 이민국 직원 수십명이 등록 절차를 돕기 위해 쭉 나열하여 앉아 접수를 받고 있었고, 그들이 앉은 자리 위에 뒤쪽 벽면에는 창구 번호가 큼직하게 인쇄되어 붙어져 있었다. 체크인은 이 중 원하는 번호로 가서 줄은 선 뒤 내 차례가 되면, 담당 직원에게 과거에 받았던 영주권 카드와 선서식 안내 우편을 보여주면 되는 꽤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17을 선택했다. 담당 직원은 내 이름을 확인한 후 내가 제출한 영주권 카드 2개에 펀치 구멍을 뚫은 후, 내 시민권 선서식 안내 우편에 스테이플 처리를 하고, 우편에 17번을 기재하여 돌려줬다. 식이 끝나면 이 번호로 다시 돌아와서 시민권 증서를 받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등록을 마친 후엔, 이민국이 직원들이 나눠주는 작은 성조기, 대통령으로부터 온 축하편지가 든 노란봉투, 유권자 등록을 안내하는 플라이어, 브로셔, 그리고 미국 여권신청서가 든 흰색 봉투를 받고 직원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착석하면 되는데, 마치 졸업식처럼 청원자와 가족들은 같이 착석할 수 없었다. 청원자는 앞쪽 Applicant 구역에 앉을 수 있고, 가족들은 뒤쪽에 마련된 Guest 구역에만 앉을 수 있었다. 하여, 나는 Applicant 무리속에, 그리고 스티븐은 Guest 무리속에 각자 홀로 앉아 식의 시작을 기다렸다. 무대위엔 커다란 성조기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에 자리한 프로젝터에는 오늘 시민권을 받는 청원자의 출신 국가명들이 알파벳 순으로 기재되어 슬라이드로 재생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국가명이 있던지, 한국이 나올때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자리에 착석을 했을 때는 시계는 이미 7시 40분을 가리켰었고, 식이 시작된 것은 정확히 한시간 뒤인 8시 40분이었다. 내가 일찍 도착한 편이라 수천개의 빈 의자들을 지나치며 맨 앞 줄 구역에 착석을 했었는데, 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자리는 만석이었다. 딱 봐도 60대 이상의 히스페닉계 노부부가 정말 많았다. 식장은 믿지 못할만큼이나 조용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는데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이 숙연한 현장이 만드는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2020년 1월 22일 @ LA Convention Center
160개 국가에서 온 3,866명의 이민자들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
식이 시작되고, 두 명의 이민국 직원이 식의 시작을 알리며 대피 시 참고사항, 행사 주의사항 및 축하메세지를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가면서 안내했고, 이윽고 백인 여성의 판사가 올라와 – 오늘 자리한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오기 까지 본인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이 있었을거라고 –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며, 오늘 이 자리에 3,866명의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받게 된다며, 그 중 시민권을 받게되는 가장 많은 나라 TOP 5를 공개했다(1순위: 멕시코, 2순위: 필리핀, 3순위: 베트남, 4순위: 이란, 5순위: 중국). 이후 판사는, 국기에 대한 맹세인 The Pledge of Allegiance를 본인을 따라 읽으라고 하여 우리는 한문장 한문장씩 또박또박 읽어나갔다(스티븐이 이를 놓치지 않고 촬영했다. 아래 비디오가 그 내용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나고 그녀는 오늘 우리가 선서식이 끝나고 정식 미국 국민이 되면, 미국 정부를 공공연하게 비판해도 되고 또 그것을 넘어서 하원, 상원 그리고 지역구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여 우리 정부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지 알려주거나, 본인이 직접 출마를 할 수도 있다고도 전했다. 그리곤 자기의 개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 본인의 아버지는 멕시코 출신이고, 어머니 또한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라고 말하며, 1세대 이민자의 자녀로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수천명에게 1세대 이민자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수여하는 일은 정말 본인에게도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며, 자기 부모님도 미국에 와서 문화, 언어 및 모든 방면이 낯설었지만 포기 하지 않고, 노력했고, 교육을 받아 성공한 이민자 가정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오늘부로 어떤 미국 시민이 될 지 결정해야할거라고 운을 뗐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미국 시민이 될 지, 아니면 미국정부의 혜택만 이용해먹는 시민이 될 지를 말이다.
판사의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God Bless America라는 뮤직비디오와 대통령의 축하메세지 동영상을 시청했다. 이후엔 일반인으로 보였던 백인 여성 한분이 무대위로 올라와 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를 무반주로 부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내 곧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식이 끝나고, 이민국 직원들은 Guest석의 사람들만 성급히 퇴장을 시켰고, 새로 시민자가 된 사람들은 착석상태를 유지해달라고 연거푸 방송 및 안내를 했다. 그리곤 Applicant는 블록마다 사람들을 차례차례 시민권 증서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약 10분정도 지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을 했고, 이민국 직원들이 시민권 증서를 나눠주고 있는 벽에 다다르자 나는 곧장 17번으로 향했다. 직원은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내 영주권 카드가 스테이플러 처리된 우편을 회수하였고, 레터지에 뽑은 듯한, 금방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찢어질듯한 시민권 증서를 내 손에 안겨주었다. 시민권 증서는 판사가 서명한 이름변경서류 한장과 함께 스테이플러 처리가 되어있었다. 나는 미리 챙겨간 클리어 파일에 시민권증서를 고이 넣고, 스티븐이 기다리고 있을 1층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하여 10개월 정도의 절차를 거쳐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미국 시민이 되었다. 아직 특별히 달라진 점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이 날을 꼭 기억하고 싶을 것 같아서 자세히 기록해보았다.
시민권을 받은 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기분이 어떤지를 물었다.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특별히 기쁘지도, 한국 국적을 잃게 되었다는 걸로 슬프지도 않다. 마음같아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복수국적을 갖고 싶지만 현재 한국의 외교부 지침상으로는 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복수국적 양립이 불가해 앞으로 공식적으로 미국인으로 살아야 하겠지만, 나와 한국은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성(姓)을 남편성으로 바꿨다해도 여전히 난 우리 부모님 자식인 것처럼 말이다. 이중국적이 가능하든 가능치않든, 두 국가의 좋은 점만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판사의 말마따나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떤 미국 시민으로, 어떤 한국계 이민자로 살 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살다보면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해 아쉬움도 생길거고, 모국인 한국을 저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순간도 문득문득 생기겠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의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좋은 방향으로 한발짝씩 나아가는게 앞으로 정말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감정마저도 미국에 살고 있는 내 특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거라고 여기며, 이를 이민 1세대로서 평생 가져가야하는 짐이라고 생각하지말고,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할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미국시민권 취득이 결코 쉽지 않았던 여정이었음을 잊지 말자.
1988년 어느 가을 밤, 나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태어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고,
2020년 어느 겨울 아침, 난 미국 시민권이라는 또 한번의 특권을 받았다.
아무런 노력없이 거저 받은 특권들이 참 많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베푸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Timeline
3/21/19 | 시민권(N-400) Online 신청($725) |
3/28/19 | Receipt Letter 우편 수령 |
3/29/19 | Biometrics ACS Letter 우편 수령 |
4/11/19 | Biometrics 완료 |
11/15/19 | 비자 인터뷰 + 시민권 시험 안내 우편 수령 |
12/16/19 | 비자 인터뷰 + 시민권 시험 완료 |
1/2/19 | 시민원 선서식 안내 우편 수령 |
1/22/20 | 시민권 선서식 참석 및 시민권증서 수령 |
+ 사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정보들
1) 비자 인터뷰: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으로인해 시민권신청 자격을 받은 경우, 최근 3개월 동거 증거자료를 지참할 것
2) 선서식: LA 컨벤션센터 주차비 $25 (장소에 따라 $20도 있음), 선서식 후 여권신청을 더이상 안받는다는 것